돌이켜보면 너무나 순진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친구나 선배, 부모, 스승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표를 내고 업무 인수인계가 마무리가 되어갈 때 즈음
이전 팀장님이 얘기를 하자고 했다.
팀원으로 있을 때에도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 한마디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한 번쯤은 끝까지 버텨봐라"
퇴사를 한지 10년도 넘었지만 이 말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그 당시 내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현 팀장과의 불화였다.
불화의 원인은 내 업무가 아닌 업무를 자꾸만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칼퇴를 위해서 업무시간에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하루 업무량을 스캔하고 업무 시간과 업무량을 고려하여
머릿속으로 적절히 업무를 분배했다.
일이 많다 싶을 땐 때론 점심시간에도 일을 했다.
큰 변수가 생기지 않으면 모든 업무를 퇴근 전에 마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항상 일을 마치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팀장은 자꾸만 일이 주었다.
내가 널널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남들에 비해서 업무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한 사람이 하는 일을 고스란히 넘겨받았고
추가로 일을 더 받았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근무시간 안에 업무를 마치려고 하였다.
일은 점점 더 불어났고 요령이 없던 나는 계속 업무를 받았다.
다른 근무자들은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업무시간에 사적인 전화 등
많은 개인 활동을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미련하게 내 업무만 했었다.
어느 날 더 이상 불어나는 업무를 참지 않고 거절을 하였다.
팀장이 업무를 주었는데 그것은 나의 업무가 아니라고 거절을 하였다.
이제껏 받은 업무만도 남들 하루 업무의 절반은 된다고 어필했다.
나의 이런 반항에 팀장은 그 뒤로 나를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팀장에 반항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결국 이런 골이 깊어지면서 퇴사를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비굴하지만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우는소리라도 내면서, 때로는 애교라도 부리면서, 알랑방귀라도 뀌면서
너무 일이 많다고 어필을 했어야 했다.
난 너무나 뻣뻣하게 강하게 거절을 하였기 때문에
더 찍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회사 생활을 하면 자신의 일을 남에게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떠넘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부탁을 떠넘기는 것도 성향이고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사람 중에는 거절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나처럼.
죽는 시늉하는 것도 너무 싫고
거짓말하는 것도 너무 싫은 사람이 있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때 솔직하게 "노"라고 얘기하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의 인간관계는 힘들다.
거절을 해도 거짓말을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
표정으로는 정말 미안하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난 이런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해줄 수 있는 것은 해 주었는데
그게 나의 가장 문제였던 것이었다.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사람은 정말 이기적이게도
거절 못 하는 사람을 정말 잘 찾아내고
그런 사람에게 부탁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일을 떠넘긴다.
회사에서는 정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집합소다.
피곤한 회사 생활에서 자신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인간들이다.
간혹 정말 좋은 사람들도 만나지만
대부분은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런 적의 공격이 들어오면 적절히 방어할 줄도 알아야 하다.
그래야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난 그런 공격과 방어활동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어쩌면 정말 똥멍청이였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내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내 정치를 점수로 메겼다면 아마도 0~10점 사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하면 더 이상의 이상한 사람들은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었다.
어딜 가나 꼭 그런 사람들은 존재했다.
계를 한다거나 동호회 또는 어떤 집단 모임 속에도 꼭 그런 인간들은 존재했다.
더욱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잘한다.
자신은 몸이 안 좋고 갑자기 일이 생기고
갖은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마치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부탁받은 사람이 인정머리 없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를 해야 한다.
방어를 하려면 직설적인 방법도 있지만
이제는 남들처럼 비굴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자신의 일을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을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정말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못한다
몸이 아프다, 급하게 어디를 가봐야 한다
정말 비굴하지만 정말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하기로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싹퉁머리 없는 놈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 주위에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비굴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이기적이고 기본이 없는 인간들은 존재한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려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도망쳐서는 안 된다.
도망친 곳에도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이 들어오면 적절히 방어를 해야 한다.
조금 비굴하지만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팀장님의 그 한마디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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