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도로는 비어 있었고 나는 그 적막이 좋았다.
도시는 낮 동안 너무 많은 얼굴을 강요한다.
출근하는 얼굴, 버티는 얼굴, 짜증 나는 얼굴, 참는 얼굴.
하지만 이 시간엔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여유롭게 1차선에서 운전을 했다.
곧 유턴을 해야 해서 속도는 조금 느렸다.
하지만 새벽 시간에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룸미러 속에 헤드라이트 하나가 보였다.
거리는 충분했고 속도도 괜찮았다.
번쩍.
순간 눈이 따끔거렸다.
쌍라이트를 켠 것이다.
마치 내 뒤통수를 찌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어서 길고 시끄러운 크락션 소리가 들렸다.
아주 거칠게 느껴졌다.
빨리 비켜라는 일종의 경고같이 느껴졌다.
나는 유턴을 해야 했고 속도는 더 내려갔다.
또다시 번쩍. 번쩍.
클랙슨. 클랙슨.
새벽의 여유를 완전히 깨부수는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나의 분노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뒤차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쌍라이트로 인해 눈을 못 뜰 정도가 되었다.
눈앞이 하해지면서 과거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억울했던 일들, 참았던 일들, 그냥 넘겨버린 순간들...
뒤차로 인해 억울함과 분노가 한 번에 치솟아 올랐다.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빨간불 신호에 걸렸다.
뒷차는 차선을 변경하여 내 차 옆으로 왔다.
우리는 나란히 섰고 동시에 창문을 내렸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얼굴에는
짜증, 분노, 알 수 없는 악마 같은 표정이 보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웃으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은 힘의 문제였고 자존심의 문제였다.
순간 시간이 멈춘듯했다.
난 만일을 대비하여
항상 글로브박스에 총을 뒀다.
눈은 상대방을 응시했지만
오른손은 글로브박스 열고 총을 잡고 있었다.
절대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단계는 넘어섰다.
주변은 조용했고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빨간불의 신호는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졌다.
'뭘 할 수 있을까?'
적막을 깬 것은 상대방이었다.
쌍스러운 욕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을 튀기며 욕을 하는 모습이 마치
소리가 나지 않는 무성영화처럼 느껴졌다.
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전과는 다른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나는 총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그놈의 머리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빵.
딱 한발이었다.
총소리는 새벽의 적막을 찢어버릴 듯 컸지만
아주 짧은 순간 다시 잠잠해졌다.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조용해졌다.
모든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신호등에 유턴 신호가 들어왔다.
나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유턴을 해서
반대방향으로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새벽의 도로는 한산했고 공기는 차분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만 같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 손을 바라보았다.
어제와 똑같은 나의 손이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만 같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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