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살인 사건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주차문제로 남자 둘이서 시비가 벌어졌는데
점점 더 격해질 것 같고
싸움과 살인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경찰에 미리 얘기를 했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이 싸움의 당사자이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미리 선제적으로 경찰에 전화를 한 것이었고
경찰이 미리 현장에 도착을 한다면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리 전화를 한 것이다.
공영주차장에 한 칸이 비어서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내 뒤로 뒤따라 오는 차들이 많아서
잠깐 옆으로 정차를 하고
뒤에 있는 차들을 먼저 보내는 중이었다.
내 뒤로 차들을 모두 보내고
이제 비어있는 자리로 후진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어느 미친 차 한 대가 그 비어있는 자리에 주차를 하려고 한다.
내가 비상 깜빡이도 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안 보이는 건가.
순간 열이 킹 받아서 클랙슨을 아주 기분 나쁘게 뿌아아앙~~~ 하고 눌렀다.
상대방차가 후진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이제 나의 존재를 알았으니 나가겠거니 했는데
또다시 계속 주차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클랙슨을 감정을 실어서 빵 거렸다.
이제는 멈칫하지도 않는다.
나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차로 걸어갔다.
나를 본 상대방 운전자가 창문을 내렸다.
난 상대방 운전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짧은 머리 다부진 체격
험상궂은 얼굴은 아니지만
나름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양아치는 아니지만
운동을 했는지 아니면 건달인지는 몰라도
함부로 덤빌 수 없는 그런 분위기와 인상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젊잖은 얼굴이다.
체형은 통통한 편이고 덩치 또한 조금 있는 편이다.
젊잖은 얼굴이지만
인상 쓰기에 따라서 무서워 보일 수도 있는 인상이다.
내가 여기서 비상깜빡이 켜고 있는 것이 안 보이냐.
그리고 클랙슨을 눌렀는데 왜 계속 주차를 하냐.
나는 당당히 말을 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럼 빨리 주차를 했어야지.
왜 주차를 안 하고 있었냐며
자신의 차를 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상세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차를 주차하지 못한 이유는
뒤차를 먼저 보내기 위한 것이었고
이제 막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새 주차를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최대한 친절하게
화가 나지만 화를 참고 짜증을 참으면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점잖게 말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다.
나는 나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안다.
최대한 노력을 하다가도
한번 뚜껑이 열려버리면
정신병자처럼 아주 폭력적으로 변해버린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다.
이 정도 설명을 했으면 그랬냐면서
몰랐다고 미안하다면서 차를 빼서 나가야 했다.
그런데 계속 이 놈은 주차를 했고
이제는 주차를 완료하고 시동까지 껐다.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순간 이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까지 했는데
왜 내 말을 듣고도 아주 당당하게 주차를 완료하고 시동까지 끄는 거지.
이제는 차문을 열고 문을 잠그고
지 갈길 가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잡고 있었던 이성을 점점 놓고 있었다.
나는 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바로 112에 신고전화를 한 것이다.
싸움이 벌어질 것 같고
어쩌면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고.
어쩌면 이 전화는 경찰이 빨리 현장에 도착해서
내가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나의 바람 같은 것이다.
나는 이미 3년 전에 살인을 저지른 경력이 있다.
쉽게 말하면 살인 전과 1범이다.
출소를 한지는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도 순간 화가 나서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번과 마찬가지다.
아주 상식적인 일에서 상대방이 비상식적으로 나오니까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뻔뻔하게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나를 개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을 취했고
나는 순간 이성을 잃었고
항상 지니고 다니던 만년필로 그놈의 목을 수십차례 찔렀다.
그 놈의 목에서 피가 하늘로 솟구쳤고
상대방은 과다출혈로 죽었다.
그 당시 나는 30대였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대기업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명문대 졸업생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
길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사건은
한동안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당시 나는 몇 달 전 이혼을 하고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고 짜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처럼
아주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고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고 살인을 하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바로 검거가 되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에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재판이 시작이 되었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나는 최대한 형을 작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초범이고 우발적이고
매우 반성을 하고 있고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한점 등을
최대한 공략하며
판사의 감정을 공략을 했다.
또한 명문대 출신 대기업에 근무하는 것도
판사에게 어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수차례 눈물을 보이며
최대한 반성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판 내내 그런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변호사와 나의 이런 노력으로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살인을 하고도 2년 6개월 실형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2년 6개월이라는 형을 모두 살고
6개월 전에 만기출소를 했다.
전과가 있다 보니 일반직은 취업을 할 수 없었고
아르바이트로 렌터카 차량을 운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오늘 이렇게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12에 신고전화를 했고
그 신고하는 전화를 상대방은 모두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방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해를 못 한 것일 게다.
이게 정말 살인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상대방과 쌍스러운 욕이 오갔다.
상대방은 아직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그저 인상 좋아 보이는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는 이전에 사람을 죽인 살인전과 1범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듯했다.
살인전과를 말했다면 어쩌면 일이 더 쉬워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도 믿지 않고 코빵귀를 꼈을 수도 있다.
쌍욕은 계속 오가고 점점 더 폭력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난 나도 모르게 과거의 만년필처럼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사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멀지 않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아주 가깝게 존재한다.
모처럼 아침에 시원하게 장을 비우고
집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서 기분 좋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미친놈이 운전하는 차가
나를 덮쳐서 몇 초만에 죽을 수도 있다.
부부싸움에서 치명적인 그 한마디 말만 안 했어도
단순히 부부싸움으로 끝났을 건데
그 한마디 때문에 결국에는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든 어느 순간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만약에 상대방이 그냥
자초지종을 듣고 미안하다며
차를 이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버티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실랑이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미 반쯤은 엎질러진 물이다.
신고전화를 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경찰은 도착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어쩌면 경찰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그 말만 듣고
출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과 점점 몸싸움이 거세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무기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하며
쌍욕이 오가던 중에 상대방이 먼저 펀치를 날렸다.
나는 한방을 제대로 맞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다부진 체격이어서 그런지 주먹의 파워는 엄청 강했고
난 엄청난 충격에 땅바닥에 쓰러졌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순간 쓰러진 내 앞으로 뾰족한 쇠막대기가 보였다.
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상대방은 약간 멈칫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설마 찌르기야 하겠어 하는 눈치였다.
난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경찰은 도착하지 않았다.
난 점점 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경찰이 와서
이 현장을 수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또다시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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