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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남자2

by shworld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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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오늘도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좋은 점들이 많이 있다.

첫째로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무료 wifi가 있다.

그리고 버스에 비해서 흔들리지 않고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유튜브 영상을 본다거나

아니면 앱을 통해서 영어도 공부할 수도 있다.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도 만만치 않게 있다.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매일 빌런이 존재한다.

그 빌런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둘째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무턱대고 탔다가

퇴근시간에 걸려버리면

정말 헬이다.

보통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가 가장 피크인데

이때는 정말 주변 사람의 체취까지 느껴지기도 하는데

너무 괴롭다.

물론 서울에 비하면

부산의 지하철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남자는 사람과 밀접하게 붙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 많은 것 자체가 남자에게는 숨쉬기 힘든 고문이다.

셋째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차 승객들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밀치면서 올라탈 때 정말 괴롭다.

내려야 하는데 앞을 딱 막고 서있기도 하고

옆으로 밀치면서 올라오기도 하는데

내리다가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릴 때 부딪히면서 내리는 것도 정말 싫다.

10분, 20분 서서 가는 것도

그렇게 힘든 일인가.

거의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남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밤 시간이었다.

남자가 지하철에 올랐을 때

꽤 빈자리가 보였다.

남자는 앉을까 말까 살짝 고민을 했다.

자리가 있으면 앉는 게 당연하겠지만

양옆을 띄워서 앉는다 하더라도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타서

그 양옆에 앉으면

어차피 자리는 비좁아지고

똑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마침 맨 끝자리 두 개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자는 맨 끝자리에 앉았다.

다음 역에서 어떤 가방을 멘 한 남자가 탔다.

그리고 남자 옆 기둥에 기대어 섰다.

그쪽 문이 잘 열리지 않으니 나름

꽤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가방 멘 남자는 가방을 멘 쪽을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로 향하게 기대어 섰다.

그 순간 그 가방이 자리에 앉은 남자의 얼굴까지 밀고 들어왔다.

술에 취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가방 멘 남자는 무심한 건지 신경을 못쓰는 건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가방 멘 남자는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보였는데

다 큰 성인이 그 정도 눈치나 센스가 없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봤으면

그 정도의 눈치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아니면 무슨 이유 없는 못된 심보가 있어서

일부러 그러는가 싶기도 했다.

요즘은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

대체 예측을 할 수 없는 세상 아닌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오늘의 빌런인가 싶기도 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는

손으로 가방을 살짝 밀었다.

서있는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다.

세게 밀면 문제가 되겠지만

살짝 밀어서 당신의 가방이 불편을 끼친다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보통은 그렇게 살짝 밀면

그제야 인지를 해서 깜짝 놀라며

즉시 자리를 옆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가방을 치워서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됐다며

신호를 보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살짝 밀었음에도

이 남자는 가만히 있다.

못 느낀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버티는 건가?

가만히 버틴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일부러 그랬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의 실수는 신경도 안 쓰면서

상대방이 민 것에만 기분이 나빠하는

소위 또라이인 건가?

정말 오늘의 빌런인 건가?

자리에 앉는 남자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불편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다시 약간 더 세게 가방을 밀어서

서 있는 남자에게 확실하게 신호를 줘서

가방을 치우게끔 하든지

아니면 직접 말을 해서

가방을 좀 치워달라고 하던지

아니면

본인이 자리를 이동하던지

이 세 가지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남자들의 세계도 똑같다.

일단 자리에 앉은 남자는 서있는 남자를 봤다.

키는 170 센터 정도로

자신보다 작아 보였고 외모도 작았다.

일단 이 정도면 혹시나 모를 전투에 대비해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을 했다.

아주 유치한 것 같지만

남자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동물의 세계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앉아 있는 남자는

자신보다 약해 보인다고 해서

강하게 나가지는 않았다.

일단 다시 한번 더 가방을 조금 더 세게 밀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방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서 있는 남자가 힘을 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순간 앉아있는 남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저 남자의 의도였다는 것인가.

뭐지.. 뭐지... 뭐지...

앉아 있는 남자는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처음 보는 남자가 왜 자신에게 불편을 끼치고

그리고 불편하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미안해하지는 않고 오히려

힘을 줘 버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이렇게 불편한 채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시비가 붙을 각오로 말을 해야 한다는 건가.

말을 섞기 싫었다.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기도 싫었고

이 또라이 같은 남자와는 더욱더 말을 섞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떠나는 것은 왠지 좀

꼬랑지를 내리고 지는 것만 같기도 했다.

사실은 피하는 것이 지는 것은 아니다.

또라이를 피하는 것은 현명한 전술이다.

하지만 남자들의 세계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괜히 꼬랑지 내리고 도망가는 것만 같아서

선뜻 그렇게 결정하기도 힘들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젠틀하게 서 있는 남자에게 말을 했다.

"저기요, 가방이 밀고 들어와서 불편한데

가방을 좀..."

이 말은 들은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앉은 남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바로 다시 눈은 휴대폰으로 향했고

자리는 조금의 이동도 없었고

가방은 여전히 남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남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도대체 나하고 뭐 하자는 것인지.

싸우자고 하는 건가.

아니면 날 무시하는 건가.

앉아있는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싸움을 하는 것은

거의 쌍방폭행이 되기 때문에

이유가 어찌 되었든 서로가 처벌을 받는다.

싸움을 하면 100% 맞아야 쌍방폭행이 아닌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혹시나 모를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남한테 두들겨 맞는 건

참으로 처참한 상황이고 기분 또한 안 좋다.

그리고 몸도 상한다.

돈이야 물어주지는 않더라도

여러모로 자신에게도 피해가 크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두들겨 패버리면

그 순간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병원비도 물어줘야 하고

법적인 처벌도 받아야 하고 어쩌면

전과 기록도 남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은 가급적이면 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는 제대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여기서 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이 또라이처럼 맞서야 하는 것인가.

남자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윳돈이 없어서 싸움을 하면 전략적으로 맞아야 하는데

그러면 싸울 이유가 있나

그렇다고 피하면 오늘 하루 기분이 참 거지 같을 것 같은데

이런 선택을 해도 저런 선택을 해도

남자는 지는 게임인 것만 같다.

제대로 빌런에게 걸린 것이다.

오늘 빌런의 희생양은 바로 자신이 된 것만 같아서

남자는 정말 미치도록 짜증이 났다.

 

남자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 가방 멘 남자에게 강하게 얘기를 하던지

아니면 옆으로 자리를 옮기던지.

이제는 간접적으로 표현을 하는 옵션은 없다.

강하게 어필하던지

아니면 옆자리가 비어있으니 옆으로 옮기던지

두 가지 옵션만이 존재할 뿐이다.

때마침 지하철이 역에서 멈춰 섰고

미모의 여성이 지하철에 탔다.

앉아있는 남자는 이때가 타이밍이라는 생각으로

옆으로 살짝 자리를 이동했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미모의 여성은 그 빈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배려하는 듯한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미모의 여성은 제일 바깥쪽에 앉았다.

가방 멘 남자는 미모의 여성이 그 자리에 앉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성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몸을 돌려 가방이 다른 곳을 향하게 했다.

그걸 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혼자 욕을 했다.

'저 시방새'

가방을 밀어도 보고

불편하다고 말을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미모의 여성이 앉으니까

뭐 영국의 젠틀맨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니 참 역겹고 기분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인계라는 말이 있다.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남자 둘의 아무 의미 없는 힘겨루기는

여성의 미모 앞에서는

쓰레기 보다 못한 가치라는 것을 느꼈다.

남자가 허탈해하고 짜증이 나서 머리가 아파질 때쯤

다시 그 향수 냄새가 났다.

바로 옆에 앉은 여성에게서

똑같은 향수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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