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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남자 1

by shworld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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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 남자친구 봤지? 봤잖아!"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았을 때

버스 뒤쪽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도로에서 생기는 그 어떤 소음보다도

듣기 싫은 소음이었다. 

그 뒤로도 그 여성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고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버스 안의 승객 모두가 들을 정도였다. 

 

사람은 각자 저마다

개인 특유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편안하고 부드럽다.
반면에 누군가의 목소리는

가볍고 시끄럽고 날카롭다. 

듣고 있자면 마치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다.
도로의 큰 트레일러 보다 더 시끄럽고
듣기가 거북한 소리이다.    

 

토요일 오후 해운대의 도로는 차들로 가득 찼다. 

벡스코로 빠지는 광안대로가 꽉 막혀서 

구서IC방면으로 우회하여

마린시티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광안대교 톨게이트를 지나자

역시나 정체가 되었다. 

해운대 일대는 거의 모든 도로가 막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내 차선을 유지한 채

느리게 움직일지라도 그렇게라도 가는 것이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임을 

몸소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막힌 도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차에 타기 전에

아메리카노를 마신 이유였을까

화장실은 가고 싶어 졌고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앞에 시속 30킬로미터 단속카메라에서

그만 30킬로를 넘어버렸다. 

30킬로라는 것이 엑셀레이터에 

발을 그냥 올려놓기만 해도

30킬로미터가 넘어버렸다. 

화장실이 너무 급했고

카메라에 찍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찍혔을까 봐 불안하고 찝찝하고

막힌 도로에서 진은 진대로 빠지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았다. 

 

조금 전까지 남자의 상황은 이랬다. 

그래서 남자가 버스에 올라탔을 때는

정말 멍 때리며

가만히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심신을 쉬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그 모든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남자는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았고

머리는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몇 정거장을 지나서

해운대 정거장에서 그 여성은 내렸다. 

그녀가 내리자 버스 안은 너무나 조용해졌다. 

진공상태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아마 지금 그 남자가 느끼는

이 기분이 진공상태에 놓인 기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고

남자의 마음은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렌터카를 이동시키는 일을 한다. 

손님들이 렌트카를 빌려서

차를 이용하고 난 이후 인근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으면

남자가 그 주차장까지 가서

차량의 원래 위치까지 다시 이동시키는 일이다. 

페이는 시간대비 좋지는 않지만

힘들지 않고 많은 차량을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여기저기 이동할 수 있어

마치 드라이브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남자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것이 싫어서

양옆으로 충분한 공간이 있지 않는 이상

자리에 잘 앉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어해서이다. 

 

젊은 여성이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내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이전에 맡았던 향수 냄새가 났다. 

과일향 같기도 하고

어떻게 맡으면 좀 안 좋은 향 같기도 한데

또 계속 맡다 보면 좋은 향 같기도 하고

뭐... 좀 이상한 향수인 것 같다. 

그래서 그 향을 한번 맡으면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 것 같다. 

이것이 이 향수의 목적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향기를 맡으면 그 사람이 기억날 수 있는 향수. 

 

사실 남자는 향수를 싫어한다. 

특히 향수에 샤워를 한 거처럼

너무 진한 향수를 뿌려서

굳이 그 근처에 가지 않더라도

몇 미터 떨어져도 그 향이 날 정도로

많이 뿌린 그런 향수는 정말 질색이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있기가 힘들 정도로 싫어할 수도 있다. 

 

젊은 여성의 그 향수에서

다른 사람과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향수의 매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여성은 아담한 체구에 

과하지는 않았지만 잘 꾸민 상태였고

한 손에는 선물처럼 보이는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향기까지 은은히 퍼지니

토요일 오후 누군가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녀는 몇 정거장이 지나서 지하철을 내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같은 향수를 뿌린 여성으로부터

다른 여성을 떠올리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고

그것이 향수의 매력인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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